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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篇(推敲)詩房267

산수국 / 1-36 산수국 / 淸草 배창호 풍상風霜에 이리저리 휘다 만 청솔의 군락에도 이글거리는 빛살의 유착에 푸름의 가지마다 천혜의 일산日傘이 되었다 하지夏至에 걸맞게 방심의 허를 찌르는 초하의 볕을 진부하게 쏟아 내건 만 신록이 내로라하리만큼 넘치는 숲에도 담채淡彩로 빚은 산수국이 세속을 잊게 하는 그늘 잇는 소리를 놓았다 세월을 입힌 질그릇같이 솔바람에 얹힌 향기조차 드러나지 않는 몽환적인 서정을 입은 네, 꿈에도 그리는 하늘 낯빛을 닮았고 해거름 놀을 닮은 보조개는 서늘한 그늘조차 무색게 하나 같이 변신에 능한 온 몸을 전율케 툭툭 튀어나오는 예 있더라 "담채淡彩= 엷은 채색" 2021. 6. 24.
접시꽃(2) /1-35 접시꽃(2) / 淸草배창호 푸른 비가 내리는 유월, 청보리가 익어가는 이맘때면 그저 보고만 있어도 괜스레 서럽든 가슴앓이 참고 기다린 시절 인연의 곱상한 누이 같은 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닿았는지 넘치지 않아 참 좋았습니다 수더분한 예스러움조차 떨림이 은유라는 걸, 차마 알고나 있었을까요 비바람이 아프게 흔들어댈지라도 저버리지 않고 기댈 수 있는 오직 당신이란 담벼락이 있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긴 그리움의 자화상입니다! 2021. 6. 21.
달동내의 애환 / 1-34 달동네의 애환 / 淸草배창호 가로등이 가물거리는 백야白夜의 담벼락들 희멀겋게 절인 낡은 잔재들이 시대의 엇갈린 명암이 안팎으로 달라도 빛바랜 자화상에 할퀸 자국만 뒹군다 졸음 겨워하는 도시의 잿빛 안개에 가려진 가시적인 잣대가 후줄근한 단면을 군더더기 없이 연출한다 하늘만큼 높아 달 가에 걸렸다고 달동네라 불리지만 동구 밖 당산처럼, 문틈으로 스며든 빛살로 민들레는 피고 지기를 내밀한 근성으로 꽃을 피우며 오독誤讀도 즐길 줄 아는 내성을 키웠으니 빛과 그림자마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잔영이 되었다 터진 물꼬는 흑백 필름의 향수조차 쓸어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는 촌음도 아까운지 빛살보다 더 빠른 질주로 곤하게 설쳐대고 있는데. 2021. 6. 19.
싸리꽃 비에 젖어도 / 1-33 싸리꽃 비에 젖어도 / 淸草 배창호 산 뻐꾹새 울음소리에 살 내음 나는 그리움이 이제 막 해산한 설은 볕인 줄 알았는데 이맘때면 여우비도 잦아 속정을 토하는 총총한 눈부심을 매달은 자줏빛 귀티가 후 줄 거니 젖었어도 사흘이 멀다고 초록 비가 수런대고 있습니다 두고 온 유년이, 발에 챈 돌멩이처럼 기억의 언저리는 사뭇 오늘 다르고 내일이 달라도 가만 들여다보면 수더분한 산촌의 아낙을 그대로 빼닮은 달달한 바람이 일어 안개비에 휘 늘어진 싸리꽃에 차마 어쩌지도 못하는 유장한 깊은 시절 인연입니다 2021. 6. 16.
통속의 바다 / 1-32 통속의 바다 / 淸草배창호 강물이 바다를 만나기까지는 미완의 정제이지만 바람이 물결의 언어로 절벽에 흉터를 내듯이 강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는데 사람은 생각의 차이라 해도 가늠할 수 없는 선을 그어 놓고 찬 서리쯤이야 하는 만용의 객기를 부린다 보도블록 틈새 지마다 생명이 잉태되는데, 격조 잃은 가락의 리듬에도 .. 이런들 저런들 침묵에 .. 기울어진 틀 안에 놀아나는 .. 묵묵부답의 이 모순을 어찌하리, 물이, 물을 안고 흐르는 강에 둥둥 떠 있는 달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계수나무에 거침없는 마음 하나쯤 걸어두고 싶은데 부질없는 욕심일까, 동녘의 햇살은 소름 일어 올 곱게 전신을 요동치고 있는데. 2021. 6. 14.
풀물이 닿는 곳이면 / 1-30 풀물이 닿는 곳이면 / 淸草배창호 초하初夏에는 설익은 더위라도 풀물이 머물러 닿는 곳이면 남새밭 푸성귀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분단장이라곤 네몰라 하는 꼭 엄니의 무명저고리 같은 곱살한 맵시 흐드러지게 넌출 되는 영판 갸름한 국화를 닮았구나 토착의 뿌리를 내리기까지 인고의 세월 설움의 끝은 어딜까, 먼발치에서 보노라면 풀 섶이 딱 인데도 산들바람에 남실대는 향기는 실개천 물결처럼 토닥인다 아니나 다를까 누굴 닮아 눈물겹도록 억척이 몸에 밴 亡草꽃! 꽃도 꽃 나름이라 지지리도 홀대를 당하면서 사치 없는 그리움만 지천으로 피었으니. 2021.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