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篇(推敲)詩房267

유월의 비 / 1-29 유월의 비 / 淸草배창호 밤새 비가 내렸다. 밤꽃은 흐드러졌고 이파리를 쓸어내리는 유월의 비는 외로움에 굶주린 목마름을 풀어주는 갈음인 줄만 알았는데 네가 떠나는 날, 이별을 감내할 수 없었는지 밤을 지새우고도 분토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서러워 그칠 줄 모르는 슬픈 비가 되었다 아직은 살만한 딱 그만치인데 때가 되면 어련히 떠나야 하는 것을 슬프고 궂은일도 한때이고 기쁘고 잘나가던 때도 다 한때인 것을, 미련의 남은 애착도 내려놓을 때인 것을 몰랐다 너를 떠나보내면서 왜 그리 눈물이 뺨을 적시는지, 창동 불종거리를 배회하다 조촐한 버들 국숫집을 자주 찾았으며 예술촌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제목 없는 토론으로 해 가는 줄 모른 게 다반사였는데 이렇게 추억의 뒤안길이 될 줄이야, 종일 추적이는 비와 함께.. 2021. 6. 3.
비가悲歌 / 1-28 비가悲歌 / 淸草배창호 꾹꾹, 참고 참았던 범람하는 슬픔을 대숲에다 찰지게도 매달고 사방은 칠흑 같은 오열이 외등처럼 걸려있다 누울 자리와 일어설 때를 몰랐기에 꿰맞출 수 없는 반추反芻하는 지난날이 하나같이 후회의 연속이다 억지로 안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속 뜰에 이미 빗금을 그어 놓았는데 가지런해야 할 말은 요행을 바랐고 쉬어 가야 할 문장은 여백 없는 치장에 본분의 길을 잃었다 저무는 석양은 산화散華로 붉게 물들였는데 잡을 수 없는 것을 뜬구름이라 했던가 소유할 수 없는 딱, 그만치이건만 미망未忘 에 휘둘려 밤새 심금을 타는 저 빗소리가 아프다. 2021. 5. 30.
바람이 잠들 때까지 / 1-27 바람이 잠들 때까지 /淸草배창호 삶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선택한 길인데도 꾹, 버티고 있는 내 안에 끊임없이 분출되는 한 뭉텅 그리움이 나를 옭아맵니다 삼백예순날이 밀물처럼 일순간에 소용돌이쳤어도 누울 때를 알고 있는 풀의 마음을 새겼더라면, 차마 떨치지 못해 마구 헤집고 다니는 달무리 지은 사랑과 미움의 반복입니다 자적自適하는 강과 포용의 바다를 닮으라 하지만 포화하는 파도의 애환은 이내 절규로 변해 그리움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걸 몰랐습니다 집착을 벗어나면 지혜의 눈을 뜬다는데 알량한 뻗대기의 빌미에도 어긋나 바람이 잠들 때까지 기다림밖에 없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놓지 못하는 업연業緣의 업보를 짊어진 소유할 수 없는 공허한 애착이 세월조차 거슬러 곡절.. 2021. 5. 26.
여우비 내리는 山寺 / 1-25 여우비 내리는 山寺 / 淸草배창호 선암사 산중 도랑에 안개비 수런수런 망울처럼 자박자박 숲길을 굴러 풀물 비가 머문 자리마다 님의 입술처럼 반지르한 무늬가 참 곱다! 간간이 하늘 낯빛을 견주는 옥색 치장 소매니 사이로 고샅길 더듬듯이 졸금대는 여우비, 한 줌 빛살이라도 기꺼이 속 뜰에 품었으니 잔잔히 시도 때도 없이 화답처럼 번진다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람이 없는 인연이 진국처럼 묵상에 들어 늘 그리움을 별처럼 헤어보건만 집착은 고통의 시작이라 했나, 번뇌는 산죽山竹처럼 사각이는데 2021. 5. 17.
한 송이 장미는 / 1-24 한 송이 장미는 / 淸草배창호 아름다운 건 눈이 아니라 마음이란 걸 알면서도 눈에 비친 네 모습이 달빛에 반짝이는 강물처럼 곱고 새벽 찬 이슬처럼 전율을 일게 한다 앳된 설렘의 시작이 가슴을 뛰게 하는 성숙을 빚어 동공이 주체할 수 없는 연민에 함몰되었으니 어찌 널 모른 체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때 되었노라 지고 말 꽃이라 해도 눈부시게 빛나고 이미 내 안에 흉금 없이 스며든 참고 기다림이 다반사인데 욕심이고 꿈일지라도 미어지도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네게서 통속通俗이라며 사랑이기를 배웠으니 어쩌랴. 2021. 5. 12.
그 시절 그 후(變遷) / 1-23 그 시절 그 후(變遷) / 淸草배창호 잠이 덜 깬 전신주, 희멀건 수은 등이 연신 하품을 해대며 게슴츠레 빛조차 잃어간다 회색빛에 먹물 한 방울 찢트려 얼룩진 도시의 안개가 스멀스멀 풍상에 절인 골목길이 꺾이고 패이고, 적나라하게 각진 세상을 연출한다 비집고 들어온 빛살만큼이나 꺼질 줄 모르는 삶의 불씨인데 져버리지 아니한 햇살은 동구 밖 당산나무처럼 굴곡의 여정을 외면치 않았다 변해야 산다는 풍진세상에 빛과 그림자 속에서 공존이 당연한데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오늘의 흐름이 터진 물꼬처럼 잃어가는 마음이 아프다 골목길, 향수는 예나 지금이나 아련한 그대로인데 억, 소리 나는 비명을 부정할 수 없는 오늘. 2021.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