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篇(推敲)詩房267 바람이 떠날 때까지 /시.91 바람이 떠날 때까지 / 淸草배창호 바람은 불어야 바람이라지만 해와 달이 바뀌는 삼동三冬 어귀는 귓불이 얼도록 시리기만 한데 가물거리는 낡은 가로등이 키 재기에 한창인 시름 깊은 달동네의 애환은 천정부지로 솟는 지전紙錢 줄타기 놀음에 주름골은 날로 깊게 음각된다 시류時流를 타는 변혁의 추구가 모세혈관처럼 흐르는 산복도로에 빛살보다 빠른 세월의 품앗이가 되었어도 흑과 백의 꼭짓점에서 색깔마저 회색 된 관습도 사고팔 수 있는 내성을 키웠으니 양날의 칼과 같아서, 탁류가 질척이는 양극의 늪에는 기고만장한 할퀸 자국만 스멀거린다 2020. 12. 18. 모닥불! /시.90 모닥불! / 淸草배창호 생에 어느 날, 우연이 되었을지라도 먼 발취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조차 저미도록 콩닥 이는 울림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물결처럼 잔잔히 번지는 희열은 달을 닮은 별이 되어 향기를 채울 수 있음은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으로 행복해할 수 있는 타오르는 불꽃이기 때문입니다 저녁놀은 모두를 주고 가는 시공을 초월한 일인데도 은하의 강이 꺼지지 않는 잉걸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2020. 12. 17. 바람이려니 /시.89 바람이려니 / 淸草배창호 선택한 가치에 존중하고 하나같이 존중받는 꿈속에서도 풀숲의 행간을 서성이는 무제의 그 바람은 멈출 수 없는 애끊는 시나위가 되었다 아득한 생각과 참을 수 없는 모호함이 펼쳐진 소유는 욕심에서 비롯하지만 일탈을 꿈꾸는 구름바다도 바람 많이 할 수 있는 거,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읽을 수 없는 문장의 부호처럼 지지 않는 영겁永劫의 별이 되었기에 내칠 수 없는 내 안에 딱 그만치 외로운 섬 하나 동동 떠 있다 2020. 12. 12. 인기척 /시.88 인기척 / 淸草배창호 호수에 점을 찍으려 돌을 던진다 파문처럼 일고 있는 아집이 통속의 바다를 향하는 열정 하나만 믿고 낯익은 앞만 보고 낯설게도 묵묵히 왔다 꿈은 늘 아름다운 거, 깊은 강물은 사색을 즐기지만 꽃비가 내리는 환희만 보이는 까닭을 누군가는 몹쓸 병이라 말하지만 푸르도록 꿈꾸고 있어 전하지 못하는 것이라 해도 전율케 하는 살 내음의 그리움, 애틋한 속삭임만 잔잔히 울리고 있는데 파도의 절규가 절벽에 흉터를 내듯이 인기척만으로도 마음 저리는 병이라는 걸. 2020. 12. 10. 겨울만이 피울 수 있는 꽃 /시.87 겨울만이 피울 수 있는 꽃 / 淸草배창호 귓불이 에이도록 바스락대는 겨울바람에 한 때의 잘나가든 영화도 아스라한 무늬의 빛처럼 새겨졌지만 겨우내 은발을 휘날리는 억새 곁에는 차마 연민을 저버릴 수 없어 구절초 대궁마다 상고대가 눈이 시려도 바람에 누워버린 방초만이 곁 지기가 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무딘 살얼음에도 젖무덤 속살처럼 어찌 저리도 고울까 뽀드득, 하얗도록 소름 일어 지르밟는 소리조차 아리기만 한 겨울만이 피울 수 있는 꽃, 간밤 삭풍을 이겨낸 잠 못 든 그리움의 흔적들은 가슴 설레게 한 첫사랑인 양 네, 동트기 전 보란 듯이 섧게도 사랑할 수만 있다면 2020. 12. 1. 겨울 초입 소리 /시.86 겨울 초입 소리 /淸草배창호 솔 버섯 피는 절간 뒷산, 낙엽만 밟아도 눈물이 흐르는데 서산으로 기우는 낙조가 그렇고 입동 바람에 뒹구는 가랑잎마저도 떠나보낸다는 건 차마 서럽다 언제까지 영겁永劫인 줄 몰라도 산죽山竹이 서걱이는 것조차 처연凄然을 갈고 닦는 산사의 풍경 소리 물레방아 되어 가고 옴도 잊을 줄 모른다 2020. 11. 21.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