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篇(推敲)詩房267 낙엽이 가는 길 /시.85 낙엽이 가는 길 / 淸草배창호 참 곱다 쪽빛 치마 색동저고리 고운 네, 절색이 어디 갈까마는 나빌레라 춤사위에 동공이 멎었는데 소슬바람이란 놈이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어 시새움의 서리 짓이 한창이란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러 밟히는 것도 서러운데 이내 다가올 동토凍土의 자리매김에 잘난 한 때도 속수무책이라서 오금 저린 나신이 될 터이지만 텅 빈 허허로움조차 충만이라며 안고 뒹군다 바람은 불어야 바람이란 걸 모를까마는 떠나가는 옛사랑만 바스락거린다. 2020. 11. 19. 나뭇잎 /시.84 나뭇잎 / 淸草배창호 스쳐 가는 바람에 주눅 든 떨림으로 만감은 오감을 빚고 있다 생각이란 눈높이도 때론 돌아설 줄 아는 빈 마음 되어야 할 터인데 의지할 곳 없는 두려움이 휑하게 전신을 휘감았다 찰나에 빚어진 그때라지만 빛바랜 투정일지라도 지난 자리마다 흔적의 잔재로 채웠다 예측할 수 없는 게 살아가는 이유라 했든가, 아이처럼 응석 부리는 까닭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돌아서 먼 길 떠나는 나뭇잎인 것을. 2020. 11. 16. 오독誤讀의 상흔을 /시.83 오독誤讀의 상흔을 / 淸草배창호 애환의 뒤안길 역사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든 백열전구 삿갓 등에서 수은 가로등의 변천이 엊그제였었다지만, 할퀸 자국만 헤집고 온 너덜너덜한 자화상이 끝없이 유영하는 군상의 무리는 지금도 표류의 구렁텅이에 빠져 공전만 하고 있다 흑과 백의 색깔마저 혼돈을 거듭 나도 관습이라며 내성을 키운 독심술로 이분법의 양날도 꿈의 잔영이라며 마다치 않았다 진부한 서술조차 격랑의 생채기인데 모세혈관처럼 흐르는 신문물에 빛살보다 빠른 세월의 전이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타고 난 면면들의 빛과 그림자마저도 틈새로 스며든 빛살에 보란 듯 억새의 억척을 민들레처럼 피웠듯이 산야에 널린 풀 한 포기조차도 누울 때를 알고 일어설 때를 알고 있는데. 어찌하랴? 잘 못 읽고 있는 誤讀의 상흔을 2020. 11. 14. 억새는 /시.82 억새는 / 淸草배창호 혼연한 저물녘, 틈새에 끼인 바람이 사색에 머문다 다가올 겨우살이가 혹독하다는 건 새삼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고단한 세상사를 닮아서 하얗게 머리가 쉰 줄도 몰랐다 어제의 강물이 없듯이 시절 인연이 다하면 기약 없는 깊은 묵상에 들 테지만. 소슬바람에도 가냘픈 흐느낌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산자락 묵정밭이나 방천 둑에도 변주곡이 되었다 억새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버텨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하건만 지금, 이 순간도 하염없이 이어지는 허허로움을 말해주는 홀씨 된 애증이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2020. 11. 10. 산의 얼굴 /시.81 산의 얼굴 / 淸草배창호 돌 개천도 하늘을 닮았다 가는 세월 잡을 수가 없다는 걸 어이 천의 얼굴도 아니건만 한 때의 영화도 기댈 곳 없음을 왜, 몰랐을까 저마다 빚은 사연을 지천에 새겨 진정이 닿기만을 담담히 탈고의 몫으로 여긴 갖가지 형태의 질곡도 이내 바람이 거두어 갈 터인데 남아도는 미련에 애써 달랑이는 처연한 미소가 눈이 시릴 지경이다 변혁의 서릿발이 춤추는 판국에 변방으로 밀려나는 만추를 품었어도 정취 하나는 보란 듯 마을 어귀, 당산나무 잎새마다 저문 해로 물들여져 잔잔한 선곡의 뒤안길 배경으로 솔바람이 애써 다독인다 2020. 11. 4. 홍조의 가을을 빗다 /시.80 홍조의 가을을 빗다 / 淸草배창호 황혼에 저미도록 잠긴 소절素節 앞산, 감나무 잎이 물들기 시작할 즈음이면 까치발로 딛고 오는 가랑비 뿌리는 소리마저 스산하다 젊음이 내 있을 듯 자랑하든 엊그제가 이미 천지 사방은 충만의 취기로 만산을 덮어 해 질 녘 노을조차 한껏 견주고 있건만, 고추잠자리 휘젓는 청청한 시절 인연도 영원할 수 없이 스쳐 지나간다는 걸 차마 부정할 수 없었지만 더없는 그윽한 달빛을 마시듯 채색의 사명을 아낌없이 놓았으니 2020. 11. 1.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