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이 피울 수 있는 꽃 / 淸草배창호
귓불이
에이도록 바스락대는 겨울바람에
한 때의 잘나가든 영화도
아스라한 무늬의 빛처럼 새겨졌지만
겨우내 은발을 휘날리는 억새 곁에는
차마 연민을 저버릴 수 없어
구절초 대궁마다 상고대가 눈이 시려도
바람에 누워버린 방초만이 곁 지기가 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무딘 살얼음에도
젖무덤 속살처럼 어찌 저리도 고울까
뽀드득, 하얗도록 소름 일어
지르밟는 소리조차 아리기만 한
겨울만이 피울 수 있는 꽃,
간밤 삭풍을 이겨낸 잠 못 든
그리움의 흔적들은 가슴 설레게 한
첫사랑인 양
네, 동트기 전 보란 듯이
섧게도 사랑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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