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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의향기/산문의 房45

진퇴를 알아야 진퇴를 알아야 /淸草배창호 좋을 때는 봄날과 같이 화사한 창을 열고 싫고 언짢아질 때이면 서슬이 시퍼런 빗장을 걸었으니 별거 아닐 수도 있고 하찮은 일상의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마음과 머리가 혼미하여 서로 대립각을 세운다. 분별심은 이미 사라졌기에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이 자아를 온통 흔들어 부아가 전신을 옭아맨다. 조금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살펴서 더도 말고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봐야 할 터인데 소통의 부재에서 빚어지는 이 촌극 같은 무지를, 지레짐작하는 이 모순덩어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 또, 저지르고 만다. 내 몸속에 흐르는 피가 따스하고 정열적이라서 그럴까? 수양이 부족하고 사람 됨됨이가 모자라 욱, 하는 타고난 성격이 언제나 말썽이지만, 심호흡 한번 들이키며 사유하는 짧.. 2011. 3. 22.
억겁億劫의 인연 億劫의 인연 / 淸草배창호 사람과 사람, 만나고 헤어짐이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因緣의 고리, 가 되어서 만나고 또한 때가 되면 이별을 맞는다. 모래알같이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하듯이 업연業緣의 바다 위에 떠다니는 인생이기에 우연 같은 인연因緣의 끈이 서로 묶어 놓는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시어詩語에서 심심찮게 통용되는 영원永遠이라는 단어를 접한다. 참 그럴듯하게 듣기도 좋고 아름다운 단어임에는 분명한데 과연 인간의 영원은 어디까지 말하고 의미를 두는 걸까? 만남이란 자체를 종교적이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은 수월하게 영원을 약속하고, 책임 없이 영원을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검도 함께하고 주검이 갈라놓을 때까지 그런 연緣의 사랑이 흔치 않지만 아마.. 2011. 3. 12.
정월대보름 정월 대보름 / 배창호 팔월은 맑아야 좋고, 정월은 질어야 좋다 하니 올 한해의 시작이라는 단초는 제대로 끼워졌다 싶다. 대체로 정월이 되고서 하늘 표정은 환한 얼굴보다는 찌푸리고, 쪽빛보다는 잿빛으로 얼룩져진 모습이 참, 안타깝기만 하였는데 곳곳에 눈 폭탄이 산야를 뒤덮고 농가를 덮치고 도로조차 마비시키니 육십여 년 만의 한파요, 바다조차 얼렸으니 가정집 수도 동파는 부지기요 먹고 마실 식수난과 화장실 사용을 전혀 할 수 없었으니 이 불편이야 오죽이나 할까? 대보름을 앞두고 밤새 내린 비는 조곤조곤하게 갈증에 애태운 대지의 목마름에 해갈의 기쁨을 주었지만 올해도 환한 보름달을 볼 수는 있을까? 구제역이라 하여 달집태우기 행사가 전국에 취소된 상항이라 마을의 주민들이 조촐한 달집태우기에 아낙네와 할머니들.. 2011. 2. 18.
달의 마음 달의 마음 / 淸草배창호 문득 잠이 깨었다. 동창에 여명이 밝아온 줄 알았는데 산사의 새벽 도량 석의 목탁 소리만 들려온다. 삼라만상이 고즈넉한 이 신선한 새벽, 사위가 졸음에 겨운지 깊은 침묵의 여로이지만 연무가 산자락을 뒤덮고 가녀린 풀잎마다 무서리 젖어 대롱 매달려 있다. 밤과 아침이라는 경계가 모호하지만 밤새 올망졸망 그렇게 초롱 하든 별 무리도 오간 데 없고, 엊그제 환한 보름달로 만선의 기쁨을 내려놓던 달의 행보도 보이질 않으니 이내 동녘을 밝혀 줄 해 오름이 은연중 있겠다 싶다. 차츰 발갛고 노랗게 치장된 고운 맵시의 유난을 떨고 있는 나목의 잎 새들. 아름다움을 스스로 가꾸고 있는 자연의 소탈함이 티를 내지 않고 욕심 없는 순수한 배려의 사랑을 놓고 있으니 시절 인연에서 가져다주는 이 가을.. 2011. 2. 8.
국지성 호우 국지성 호우 / 淸草배창호 요즘은 전쟁이 따로 없다. 지구촌이 이미 시대의 변천으로 국경도 없고, 이념도 사상도 소멸한 지 이미 오래다. 국가도 사람도 모두 이기적인 구조적 모순에 순응한 자가당착이라 함께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지구 곳곳에 메시지로 전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대재앙의 신호탄인지? 억수 같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밤새 뇌성을 동반한 바람과 비, 깜깜한 시야 속에서 벌어지는 천재 이변에 그저 수마가 휩쓸고 간 전쟁장처럼 속수무책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오리 바람이 사정없이 할퀴고 간다. 자고 나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구촌의 재앙 소식에 우리라고 피해 갈 수 없었는지 태풍과 호우에 예민해지는 마음이 차츰 두려움으로 변한다. 남부 중부 북쪽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난리가 따로 없.. 2011. 2. 8.
옻나무 옻나무 / 淸草배창호 가을을 알리는 길섶 들녘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의 한들거림이 눈에 띄고, 벼가 고개 숙인 모습이 정겹다. 밭이랑 고랑마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대롱 매달린 모습이랑 산자락 까투리 묵정밭 가에 누렇게 익어가는 탐스러운 호박이 넝쿨에 치렁치렁 달려있어 오곡백과의 풍성함이 깃든 가을이 참 좋다. 아침저녁으론 선선함이 여름을 뒤 남기는 것 같은데 한낮엔 불볕이라고 까진 할 수 없어도 한 톨의 밀알이라도 알차게 영글게 하려면 마지막 소진의 젊은 수혈이 필요한 듯, 뙤약볕은 여전히 제 소임을 다한다. 들녘엔 가을이 가만가만 오고 있는데 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속이 꽉 찬, 싱그러움이 밤송이처럼 입을 벌리려 하고 석류 알처럼 탐스러운 속내를 아낌없이 보이려 하니 초록의 일색인 줄 알았는데 붉게 .. 2011.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