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침묵은 금金이다 / 배창호
한해를 또 이렇게 보낸다.
너무나 엄청난 크고 작은 일들이 밀물 썰물처럼 오르내렸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자괴감은 나를 깊은 수렁으로 좌초시킨다.
눈에 보이는 곳곳이 흙탕물처럼 난장판이고,
눈 가리고 하늘 쳐다보는 짓거리가 위선의 극치인데도
못 본 척,
내일이 아니니까,
내가 무슨,
비겁하게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줏대 없는 인간에 불과한데
그저 침묵은 금이라고 위안하고 있을 뿐,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용어는 어디에 쓸 것인지
이미 사람들은 진즉에 저당 잡혀 폐기처분 하였는지
차마 써야할 곳을 얼버무려 소신所信마저 팽개쳤다.
맥脈과 뿌리를 잃어버린 오늘의 문학관이
시대를 답습하듯이 잘도 길들어
공존의 야합처럼 삐거덕거리면서도 굴러간다.
작금에 태풍처럼 떠오르는
“나는 꼼수다”가 言論의 사명과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니 미주(순회방송)는 물론이고
나처럼 문외한인 등신도 조금은 깨달아
절절한 마음으로 배움하고 한숨짓는다.
詩人공화국인 대한민국,
발길질에 체일만큼 넘쳐난다 하는데도
고고함인가?
자존을 팽개친 상실에도 만연하는 사대주의 사상,
어느 詩人의 싯귀에서 문학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딱 지금의 세태이고 보니
황금만능주의가 이미 헤어나기 힘들 정도의 늪이 되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詩를 버렸다,
엄밀히 표현한다면 자격상실이다.
내 안의 또 하나인 나를 변극 하듯이 위선의 치장으로 도배하였으니
말해 더 무엇 하리,
용기도 없고,
세파에 떠밀려가는 꼴이 통속적인 일반관념이라
도취하고 스스로 위안 삼았는데,
詩人은 타고나는 건지,
만들어지는 건지,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함께 묻혀 가면 안 될까요,”
하는 어느 수필가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국익이 우선이라는 선린상호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할 수 있어야하며
셈으로 영리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선은 이분법이 아닌
정의로움으로 명분을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내는 슬기로움이,
겸손은 있으되 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자존을 팽개쳐서는 갓끈 떨어진 용태로서
역사에 길이 누를 끼친다.
한해의 액운이라면
깡그리 소신종이 사르듯 날리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의 모습만 떡하니 서있다.
이제 십이월을 보내면서
정치사에 또 하나 암울한 난파선의 몰락을 본다.
무엇 때문에..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어 훼손하였는데도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머리로서도 이해가 안 될뿐더러
가슴으론 더더욱 말이 되질 않는다.
뉴스보기가 두렵다.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삶은 갈수록 살얼음판을 겨우내 딛고 있는데,
양면에 충실히 이행하는 자신들의 사상관이 다를 뿐인데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글 한줄 쓰고 있지만,
내가 아닌 그가 될 수 없음이 가슴 아프다.
오직 나는 나일뿐인데
쨍한 햇살이 그립고,
한 때의 그 물결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