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나무 / 淸草배창호
가을을 알리는 길섶 들녘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의
한들거림이 눈에 띄고, 벼가 고개 숙인 모습이 정겹다.
밭이랑 고랑마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대롱 매달린 모습이랑
산자락 까투리 묵정밭 가에
누렇게 익어가는 탐스러운 호박이 넝쿨에 치렁치렁 달려있어
오곡백과의 풍성함이 깃든 가을이 참 좋다.
아침저녁으론 선선함이 여름을 뒤 남기는 것 같은데
한낮엔 불볕이라고 까진 할 수 없어도
한 톨의 밀알이라도 알차게 영글게 하려면
마지막 소진의 젊은 수혈이 필요한 듯,
뙤약볕은 여전히 제 소임을 다한다.
들녘엔 가을이 가만가만 오고 있는데 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속이 꽉 찬, 싱그러움이 밤송이처럼 입을 벌리려 하고
석류 알처럼 탐스러운 속내를 아낌없이 보이려 하니
초록의 일색인 줄 알았는데 붉게 물들인 화색이 감도는 여인의
청순한 아름다움 같아 질투하는 노란 마음도 함께 빚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걸려있는 산자락,
아직도 반은 푸르고 남은 반은 스멀스멀 붉게 변해간다.
어찌 보면 귀할 것 같은 데 또 한없이 흔하기도 한 옻나무,
참 옻도 있고 개 옻도 있다는 것인데
채색 사 같은 고운 가을 빛깔을 빚고 있으니
관상용만큼 아름답기 이를 데 없으며
위장이 부실하거나 속이 차갑고 아랫배가 냉한 사람들이
한여름에 보신용으로 서민들이 만병통치약처럼 옻닭을 찾는다.
남녀를 불문하고 몸보신으론 딱 그만인데
이게 글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아예 이 혜택을 입을 수가 없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인삼 녹용처럼 큰돈 들이지 않고 친서민적인 음식문화인데
옻을 타는 나 같은 사람이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
감히 입에 대지도 못하고 곁에 가지도 못한다.
이렇게도 좋은데 자랑을 늘어놓지만
강렬하게 빚은 붉은 잎사귀는 관상으론 그저 그만인데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의 인생사처럼 누릴 수 있는 복도 제각각이니
세상사의 이치가 하나 그른 것이 없다.
참 옻과 개 옻으로 구분 지어지듯이
부모 잘 만났으면 모든 혜택 잘 누릴 텐데
세상 돌아가는 풍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입안에 알레르기가 인다.
내 비록 음미하는 낙은 가질 수 없어도
관상의 취미조차 잃고 싶지는 않아 화단에 심어서
세상 풍속도 같은 네 바라봄을 택하였지만,
이것도 오기에서 발동인지 나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