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나누는 행복이 있다 / 淸草배창호
딱, 이맘때 산 넘어 남풍이 불어 올쯤이면 늘 마음이 바쁘다.
개구리가 활동할 때이면 봄은 이미 시작되었고,
예전에는 그나마 월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비닐 온실 집을 지어
관리하곤 하였는데 이제는 힘에 부쳐 곁을 져버리게 되었으며
일부 남아있는 관상분들은 온실이 아닌 자연에,
찬 서리조차도 마다치 안게끔 두었지만
겨우내 잘 참고 이겨 낸 분재盆栽들이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매일 눈으로 가슴으로 정을 나누고
평생의 지기를 대하듯 살갑게 교감하며 가꾸어 온
한때 미쳐버린 지난 세월이 취미의 수준을 벗어 난
강산도 훌쩍 세 번이나 바뀐 30여 년의 세월,
그때 그 시절에는
수석과 자생 란과 더불어 분재盆栽란 삼대의 유행병처럼
붐이 일기 시작하여 참으로 대단했었다.
소재를 산채 한답시고 산과 들을 땅꾼처럼 누비고 다녔으며,
전국 분재전시장과 이름 있는 분재원을 비롯한 개인 소장가집을
견학으로 배움 하러 다녔던 격랑의 시절을 보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미려한 품격品格과 인간의 손과 정성이 결집 된
수려秀麗한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어
내 안의 또 하나의 자연이 좋아서 옮겨 놓았기에
야생의 소재가 전부이고 풍상을 이겨낸 고목이다 보니
뿌리내림 동안 가장 힘든 시기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나기인데
진눈깨비와 세찬 골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는 행여 동해를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절절한 마음이지만
자생의 능력을 스스로 키워 나가길 바랄뿐 달리 어찌해볼 도리는 없었다.
수종마다 개성이 각각이라 물주기가 가장 까다로우며
교감하는 정서를 느끼는데 참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한다.
그나마 운치 있게 관상할 수 있는 완성품에는
강산이 세 번이니 변해야 한다는
한 대代라는 인고의 시간만이 결정체이다.
잎눈이 트기 전,
춘삼월이 적기인지라 꽃샘추위가 남았어도 분갈이에는 이상적이고
생육에도 아무 이상이 없어서 더욱 활발하고 조인 숨통을 마음껏
틔우는 새 시대를 풍미하게끔 하는 분재만의 격조를 이른다.
보편적으로 3년에서 5년 사이 분갈이를 하여야 하는데
분망한 일상도 아닌데 글쓰기에 깜박하는 일상이 되어버려서
실로 이태 동안 책임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올 봄은 작심하고
프로의 근성은 없어도 사계四季의 뚜렷한 변화가 좋고
꽃피움이 좋았기에 반평생 가깝게 취미로 키운 장인의 마음가짐 아래
혼을 불어넣는 듯 애정의 손놀림은 예나 지금이나 녹슬지 않아서
분토를 채에 거르고,
뿌리를 다듬어 자르고 가지를 치고 교정을 위해 철사걸이를 하여
이상적인 분에 하 세월 숙지한 안목을 발휘하다 보면
자아도취에 어느 듯 하루해가 그저 짧기만 한다.
일몰日沒이 아름다운 것은
하루를 아낌없이 消盡소진을 다하는 것이기에
오늘의 이 운치를 전해주는 분재의 묘미도
기다림을 마다치 않은 인고忍苦의 풍상을 그저 묵묵히,
만인에게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한편의 글을 습작하면서
왠지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는 까닭도
분재를 다루는 마음가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늘 느껴 왔었기에
소재가 우선이고,
오랜 시간 교감으로 기다림이
꽃피워 완성이란 정서를 내안에 담을 수 있었기에
분 하나마다, 손질하는 것은 퇴고하는 시詩글처럼 여기기에
오늘도 육신의 피로도 잊은 채
기쁘게 애정 어린 자아를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