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백일의 언약도 / 淸草배창호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내는 것이란 걸,
잊은 것 같다가도 문득 예리한 통증으로
되살아난다는 걸 몰랐습니다
잊히기만 기다렸던 것은 아닌지 몰라도
바람 잔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메마른 가지의
통곡을 뒤집는 밤낮인 걸 몰랐습니다
시절을 넘나든 산화한 나날의 연속이
초하에서 시작한 입추의 그늘까지
처서에 들면서 조금은 빛바랜 꽃잎에
괜스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듭니다
마디마다 늘어놓는 서리 낀 애증은
갈래갈래 엉킨 내 안에 떨림의 뿌리로
빗금을 마구 그어 놓았으니 잘라내고 싶어도
아니 되는 고통의 슬픈 언약이 되었습니다
먹물을 가득 묻힌 겨울이 오기 전까지
허우적거리다 끝내 허공에 박힐지라도
끝을 향해가는 그해 여름, 목이 탄 햇살처럼
네 오늘을 다 할 때까지 선연히 피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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