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이 침잠沈潛에 들다 / 淸草배창호 넘치지도 말고 꺾이지도 말고 더도 말고 딱 그만치 겨우살이라는 것이 꾸덕꾸덕한 한 철 덕장이지만 세월 때에 거슬린 회색빛으로 얼룩진 처마 곳곳에 송곳니처럼 매달린 엄동이 호시탐탐 오한에 들었으니 윙윙하고 울어대는 바람의 심보에 대숲은 마냥 서럽다 빈 가지에 걸린 고요한 조각달이 왜 이리 시리도록 긴 밤은 하얗게 오금 저린지 한때 잘나가든 그 시절들은 깡그리 태워버린 옛사랑이 되었어도 웅크리며 날 샌 시름을 다독이고 회유해도 차마 더 무엇이 서럽다고 애태울까 자고 나면 먼동이 트고 초연히 그 자리에 가고 옴도 놓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이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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