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애환 "소리"가 있어!
2011년 7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사우나를 마치고 홈프르스에 들린다.
아침에 주어진 유일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지하 매장에 있는 서점 코너를 간다.
꼭 필요한 책은 사기도 하지만 신간이라고 다 살 수는 없는 것,
개인 서점이 아니므로 책을 보는 것에 그리 큰 부담은 없어 천금같이 이용한다.
인연이란 정해진 운명처럼!
산골에서 전원생활처럼 살다 보니 적적하기도 하여 늘 큰 개를 키웠는데
어느 날 사고로 인하여 우리 곁을 떠나버린 "리트리브" 바우!
애완동물이라 불리는 작은 개는 한 번도 키워 본 적이 없었다.
tv 동물농장 프로에서나 볼 수 있었든 반려동물!
그날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을 잃어버렸는지,
아님 버려진 것인지 이미 방황의 시작이었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감정은 감정을 알아보듯이 나를 놓지 않고 졸졸 따른다.
우리 집 내자는 동물을 나처럼 좋아하지는 않지만,
못 견디게 싫어 넌더리 치지도 않는다.
왜냐면,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시츄"
집사람 친구의 권유로 당분간이라도 맡아 키우기로 하였다.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고 성별만 알 수 있어
"소리"라는 애칭을 주었다.
스킨쉽이 없어도 온순하고 영리하여
용변을 가릴 줄 아니 꼭 가르쳐야 할 훈련도 필요 없어 다행이었다.
단독 주택이고 정원이 있으니
"소리"가 정을 붙이며 생활하는 데는 불편이 없었다.
동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내자의 사랑까지 받게 되었으니
개 팔자 상팔자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좋을 성 싶다.
우리 "소리"의 타고 난 장점이라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온순한 "소리"에게서
반감이 사라져 싫어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복 받은 게 틀림이 없다.
애완동물은 사람과 동반자로서 사랑과 위로, 서로에 대한 지지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먹는 것만 차이가 날 뿐이지,
생활 그 자체는 사람 속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애완동물은 갓 태어나서 예방 차원에서 접종받아야 할 게 참 많지만,
우리 "소리"는 그런 수고는 전자의 주인이 다 하여서 한편 감사한 일이다.
집에 와서 3년은 큰 병 칠이도 하지 않았으나
천부적으로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시츄"라는 견종이 순하고 까다롭지는 않아도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는다.
3년 차가 가까워질 무렵, 왼쪽 눈을 다치게 되어 병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동물병원에선 실명에 가깝다 하였으나
내자의 지극한 간호 덕분이었는지 간신히 실명만은 면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안약과 투약을 시간별대로 먹여
눈이 아픈 쪽 눈은 원래대로 복구되지는 않았다.
튼실할 때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시력이 저하 된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처음부터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데리고 다녔으니
불편한 점도 한둘이 아니다.
특히 마트나 식당 갈 때면 어쩔 수 없이 혼자 차에 두고 가야만 하니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면 이 심정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눈을 다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탈모 현상이 진행되어 귀와 꼬리는 모두 빠져버렸다.
경상대 수의학과 교수님 병원에서 진단 결과,
의학사 전에 약도 없다는 희귀 피부병,
오늘이 7월 30일이니 "소리"가 4년을 우리 집에서 자랐고 이제 5살,
이번 "소리"의 치료를 병행하면서 우리도 새로 반려견 등록을 하였다.
정식으로 "소리" 부모로 등재를 하였다.
4년간 동고동락을 하면서, 3번의 가출로 애간장을 녹였다.
오늘 새벽, 2시 30분에 생리적 현상을 위해 "소리"가 나갔다.
늘 들어오는 시간이 일정한데 30분이 넘어도 들어오지 않아 동내를 찾아 나섰다.
날이 환히 샜다.
내자는 윗동네로 차를 몰고 갔을 때,
현관문밖에 온몸이 수채(하수구)에 빠진 몸꼴로,
시력 저하 관계로 아마 빠져버렸는데
날이 훤히 밝아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싶다.
우리 "소리"는 고양이를 보면 짓을 줄 알아도 그 외에는 짓을 줄 모른다.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목 주위와 아픈 왼쪽 눈이 심상치가 않다.
동물병원 문 열기만 기다리다 첫 진료를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눈에 상처는 입었으나 일정 기간 치료를 하면 회복될 수 있다 한다.
안약 두 가지, 5일분 약 복용,
우리 집 평화를 다시 찾아 기쁘고 무사히 돌아와 주어 감사하고 대견하다.
애완동물 가족들이 모두 이런 시련과 극복에서도
알콩달콩한 행복을 서로 나눔하고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