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눔의향기/♧좋은 글(모음)

임동규 / 시마을에서 스크랩

by 淸草배창호 2015. 1. 15.
《문예바다》2014년 겨울호
,
,
,




이렇게 바꿔 나가자

1. 시인됨에 충실하자

• 자기만족에 빠져 시의 사회적 기능을 외면하고 예술적 기능, 쾌락적 기능에만 집착한다면 독자들은 시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시인들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상상력과 창의력도 훨씬 뛰어나다. 시인들은 모름지기 겸손한 자세로 시작에 임해야 한다. 독자를 만만히 보다가는 독자들로부터 조롱당할 게 불 보듯 뻔하다.

• 시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인의 기본적 토대의 강화가 필요하다. 시적 사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야 한다.

• 문장은 기본적인 문법에 충실해야 하고, 생각은 소박하고 조촐해야 하며, 표현은 세련되지만 야하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속됨’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 무엇보다 ‘머리 굴려’ 쓰는 시, ‘책상머리’에서 짜깁기하고 편집한 시가 아니라 어떤 체험이든 현장의 피가 묻어 있어야 하리라.

•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영달과 입지, 노선을 구축하기 위해 시를 도구로 쓰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시인을 떠나 사업가나 교육자나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 그 삶에서 시가 우선이고 시 자체가 삶의 전부라 여기는 탐미적이고 무목적적인 시인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2. 독자와 소통하는 시를 쓰자

• 소통의 문제가 현대시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시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단 전체의 문제라고 본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시대, 자기의 생존이 우선인 시대에, 보다 큰 차원에서 시를 써야 한다. 그런 세상을 넓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 말이다.

• 균형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실험적인 시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

• 일반 독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독자 없는 시집, 난해한 시의 세계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시를 짓고 첨단을 걷는 시인 척, 앞서 가는 시인인 척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실험시가 시단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섣부른 그것이 주류가 되면 혼란과 부작용이 크다.

• 독자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현대시는 독자와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시적 허용을 빙자한 언어 파괴, 비평을 위한 비평이 난무하는 시단의 모습은 그다지 좋지 않다.

•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시는 이미 죽은 시다. 암호 같은 시는 제발 지양하자. 자폐적인 시를 쓰는 것은 자유지만, 지면에 발표하여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를 현혹하는 일은 제발 삼가는 게 좋겠다.

3. 비평가의 ‘돌직구’를 기대한다

• 외국문학을 전공하는 평론가들이 현재의 시단을, 신인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 편성하고자 하는 기도가 상당히 먹혀들고 있다. 그로 인하여 시단의 무명 신인들조차 무의미하고 무조건적인 아방가르드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태도들은 불식돼야 한다. 이를 위해 문학상이나 신인을 선발하는 심사위원 구성에서 비평가를 제외하는 것도 한 방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시를 비평하는 이들은 시 평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기본적으로 시 평론은 ‘시 감상 도우미’로서 독자와 시인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이며, 이 과정에서 가치 평가가 개입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미적 취향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몰각하고 있다.

• 문학적 성과가 평론가들의 현학적 평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 시인의 역량이나 작품 수준이 아니라 등단지에 따른 편견과 선입견, 인맥, 학맥 등에 좌우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 좋은 시는 좋다고 하고, 나쁜 시는 나쁘다고 말하는 비평가의 ‘돌직구’가 필요하다. 대가나 유명 시인의 태작이 단지 과거의 명망에 힘입어 상찬되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 현재의 시단에 시가 아니라 자폐적인 일기를 운문 형태로 쓰거나 외국 기행문에 불과한 산문일 뿐인, 나쁜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4. 부분보다 전체를 생각하자

• 쾌락이 지나치면 우리 시는 폐허가 될 수밖에 없다. 공리적 기능이 지나치게 강해도 시는 어떤 수단에 끌려가는 도구의 역할을 면치 못한다. 언어 예술적 기능과 도덕적 기능이 상호 보완관계로서 균형을 가질 때 새로운 시의 진보, 발전이 찾아올 것이다.

• 진정한 시인이라면 당연히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성찰하고 실천해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부정과 회피보다는 좀 더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와 노력 속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한층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5. 문단의 반성,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 우리 문단이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부정과 부패, 각종 부조리에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문예지 발행인과 편집인들의 반성이 우선되어야 우리 문단이 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 신인상, 문학상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온갖 비리가 개입돼 있는 만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 문예지에서 시를 청탁할 때, 문학 권력을 많이 누린 사람보다는 좋은 시를 쓴 시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그런 시인들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 문예지에서 시를 청탁할 때 전통적인 서정시와 실험시, 전위시 등의 적절한 배분을 고려했으면 한다.

• 현대 사회에서 시가 지닌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현대의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시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 시 작품이 다양한 인접 장르나 사회적 콘텐츠와 결합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시의 프리즘을 확산시켜야 한다.

• 일반 독자들이 시의 현대적 감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학 교육 자체를 쇄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시 교육을 위한 초중고 시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문학 교육을 강화하고 일반인을 위한 문학 강좌도 활발히 개설해야 한다. 또한 독자들이 시를 자유롭게 읽고 감상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상설화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예바다》201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