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에서 겨울나기 / 淸草배창호
그믐밤이 쪽잠에 든 초승달 재촉해도
빙점氷點의 찬 서리에 시든 억새,
메마른 바람 소리만 듣다가
때아닌 눈꽃으로
한소끔, 일어나니 또록또록 허옇다
어둑살 촉촉이 젖어 드는
떠나보낸 질곡에는 젖빛 운해로 덮여
조촐히 바라보는 일조차
회한에 든 슬픈 낮달처럼,
못내 처마 끝 휘영청 걸려있을지라도
겨울비 닮은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져버릴 수 없는 번민의 몹쓸 정을,
벚나무의 한 잎 단풍도 가물가물
희붐한 안개 속에서 사뭇 환상적인데
이별은 만남을 위한 준비라지만
강물이 흘러가듯 날 새면
이내 통정通情하길 바라는 마음인데도
범생의 가난한 겨울나기는
엊그제 텅 빈 충만조차 내려놓았건만
외따로이 눈꺼풀만 하얗도록 무겁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양현경)
어둑살 = 땅거미 방언(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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