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내리는 여름 산
장맛비 내리는 여름 산 / 淸草배창호
봄에 내리는 비는 새색시 닮았고
가을비는 시상을 불러주는 서정이라서 누구나 시인을 만들지만
여름비는 변죽이 죽 끓듯 한 여인을 닮아
시방이라도 먹장구름이 몰려와 꽈리를 틀면
이내 집어 삼킬 듯 성난 기세로 눈조차 뜰 수 없게
바람을 동반한 체
후 두둑 굵은 방울의 빗줄기를 마구 쏟아 붙는다.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처럼
천둥벌거숭이 되어 도무지 가늠이 힘들다.
여름비는 잠 비라 하였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고 사흘,
도무지 낌새를 알 수 없으니
한바탕 난리법석을 쳐야 적성이 풀리는지,
유월에 이미 청록으로 총총하게 채색을 늘었는데
장맛비에 온 산야가 찰랑찰랑 미어터질 듯이
절정의 유희가 본연이란다.
삽시간에 암벽마다 물줄기가 표호하며 하강하니
사계四季가 뚜렷한 이 강산에 여름 장맛비가 주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연출의 장관이며
폭포수가
산기슭을 감돌아 콸콸,
토사가 내를 이룬 소리조차 신명이 났다.
장맛비 내리는 여름 산은 감상 할수록 감칠맛이 깊고
비바람이 토악질을 일삼고 있는데도
원추리도 산나리도 아량 곳 하지 않고
여름 꽃을 아낌없이 피웠다.
장맛비 머금은 섶이야 고개조차 무거워 들지 못하겠지만
광염으로 달구어 질 여름나기를 끈질기게 견디려면
장맛비라도 흠뻑 포만이 생명이요
만상의 법도이기에 순응으로 일상을 맞는다.
하늘을 감싼 해거름이 되니 일순 소강상태이지만
먼 산 계곡과 산등성에 운무가 수묵화를 빚었다.
노을이 없는데도 이 찰나의 묵중한 운치가
별리別離의 일탈하는 모습이다.
“石門藝林에 앉아서”
2013.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