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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내리는 여름 산

淸草배창호 2013. 7. 5. 19:53

 

 

장맛비 내리는 여름 산 / 淸草배창호

 

봄에 내리는 비는 새색시 닮았고

가을비는 시상을 불러주는 서정이라서 누구나 시인을 만들지만

여름비는 변죽이 죽 끓듯 한 여인을 닮아

시방이라도 먹장구름이 몰려와 꽈리를 틀면

이내 집어 삼킬 듯 성난 기세로 눈조차 뜰 수 없게

바람을 동반한 체

후 두둑 굵은 방울의 빗줄기를 마구 쏟아 붙는다.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처럼

천둥벌거숭이 되어 도무지 가늠이 힘들다.

 

여름비는 잠 비라 하였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고 사흘,

도무지 낌새를 알 수 없으니

한바탕 난리법석을 쳐야 적성이 풀리는지,

유월에 이미 청록으로 총총하게 채색을 늘었는데

장맛비에 온 산야가 찰랑찰랑 미어터질 듯이

절정의 유희가 본연이란다.

삽시간에 암벽마다 물줄기가 표호하며 하강하니

사계四季가 뚜렷한 이 강산에 여름 장맛비가 주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연출의 장관이며

폭포수가

산기슭을 감돌아 콸콸,

토사가 내를 이룬 소리조차 신명이 났다.

 

장맛비 내리는 여름 산은 감상 할수록 감칠맛이 깊고

비바람이 토악질을 일삼고 있는데도

원추리도 산나리도 아량 곳 하지 않고

여름 꽃을 아낌없이 피웠다.

장맛비 머금은 섶이야 고개조차 무거워 들지 못하겠지만

광염으로 달구어 질 여름나기를 끈질기게 견디려면

장맛비라도 흠뻑 포만이 생명이요

만상의 법도이기에 순응으로 일상을 맞는다.

하늘을 감싼 해거름이 되니 일순 소강상태이지만

먼 산 계곡과 산등성에 운무가 수묵화를 빚었다.

노을이 없는데도 이 찰나의 묵중한 운치가

별리別離의 일탈하는 모습이다.

 

“石門藝林에 앉아서”

2013. 7.5.